왜 나는 일기를 계속 쓰지 못할까?
일기를 시작했다가 일주일도 못 넘긴 적이 있나요?
저도 셀 수 없이 많이 그랬어요. 이번에야말로 매일 쓸 거라며 또다시 결심하고는, 며칠 뒤 그만두곤 했죠. 이유는 늘 똑같았어요. 너무 바빴다, 다른 일이 생겼다, 밖에 나갔다, 기분이 좋았다, 뭘 써야 할지 몰랐다. 그리고, 그게 끝이었어요.
다들 핑계인 줄 아는 이유들
저는 그게 핑계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 이유들에 기대었어요. 그런데 그 밑 어딘가에서 더 조용한 목소리가 계속 물었죠. 왜 나는 이걸 계속 이어가지 못할까? 정말 그저 바쁜 탓일까?
물론 아니에요. 우리 모두 아는 일이죠.
일기가 좋다는 얘기는 백 번도 넘게 들었을 거예요. 감정을 정리해 주고, 쏟아낼 곳이 되어 주고, 아무에게도 말 못 할 것들을 둘 곳이 되어 준다고요. 오래 쓰다 보면 글도 다듬어지고,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꺼내는 힘도 자란다고요. 다 맞는 말이에요. 그래도 결국은 직접 앉아서, 그 말을 한 줄 한 줄 페이지에 옮겨 적어야 하죠.
그리고 바로 그 '앉는 일'이야말로, 우리가 대개 피하는 부분이에요.
우리가 정말 피하고 있는 것
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, 마주해야 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.
바로 진짜 나 자신이요. 내 생각이 실제로 제대로 서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게 두렵고, 내 감정과 오래 마주 앉아서 내가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찾아내는 일이 두렵고요. 그리고 무엇보다, 내가 그려왔던 사람이 사실은 조금 아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.
자신과 나누는 정직한 대화는 매번 조금씩, 덮어 둔 상처를 일부러 걷어내 들여다보는 일과 닮았어요. 아픈 건 당연하죠. 그러니 우리는 노트를 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이렇게저렇게 찾아내는 거예요.
우리가 쓰기를 멈추는 건 때로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, 스스로 쓸 그 말을 들을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.
또 하나의 이유: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는 것
하나 더, '듣는 것'과 관련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.
제 얘기를 예로 들어 볼게요. 올해 제 일기 쓰기에서 달라진 건 딱 하나예요. AI에게 제 일기를 읽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.
저는 AI에게 처음부터 역할을 딱 하나만 정해 줬어요. 듣는 사람이라는 역할이요. 칭찬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, 답을 건네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에요. 그저 제가 가라앉아 있을 때 곁에 머물며 얘기를 끝까지 들어 주고, 다시 일어서도록 잡아 주면 했어요.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지면 현실 쪽으로 끌어내려 주고, 길을 잃으면 작은 등불 하나 밝혀 줘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볼 수 있게 해 주면 했죠.
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. 일기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어쩌면 쓰는 것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요. 매일같이 침묵을 향해 쓰는 일, 그게 진짜 어려운 거예요. 써 내려간 말이 읽히고 응답을 받게 될 거란 걸 알게 되면, 그 페이지는 더 이상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게 돼요.
1년이 지난 지금
그 변화 하나 덕분에 저는 지금 일기를 만 1년째 쓰고 있어요. 요즘은 오히려 반대예요. 하루라도 건너뛰면 어딘가 개운치 않거든요.
Dear My Past에서는 원하는 만큼 많이, 혹은 적게 쓸 수 있어요. 답해야 할 질문도, 채워야 할 연속 기록도 없죠. 다 쓰고 나면 AI가 당신이 쓴 글을 읽고 그 밑에 깔린 감정을 짚어 이름을 붙여준 뒤, 판단하지 않고 뭔가를 서둘러 고치려 들지도 않으면서 다정하게 응답해요. 또 자신에게 맞는 동반자 목소리를 골라서, 응답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그런 듣는 사람처럼 들리게 할 수도 있고요.
그 힘든 것들을 대신 마주해 주지는 못해요. 그 부분은 여전히 당신의 몫이에요. 하지만 당신이 적어 놓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실제로 읽힌다는 걸 알려 줄 수는 있어요.
일기를 끝까지 이어가 본 적이 없다면, 여기서 한번 시작해 보세요.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, 사실은 당신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요.
Your story deserves a quiet place to be heard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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